금룡의 길을 찾아서 - 백두대간과 일곱 신령을 둘러싼 상덕 일행의 모험
Written by Claude 3.0 Opus
"땅을 파다 우연히 만난 초자연적 존재, 오니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김상덕과 일행은 기적적으로 오니를 물리쳤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백두대간의 비밀은 새로운 모험과 위험을 예고했다.상덕은 병원 침대에 누워 회복기를 보내며, 지난 사건을 곱씹었다. 일제강점기 때 백두대간에 박혀있던 주술적 쇠말뚝, 그것을 지키던 오니의 존재, 그리고 그 쇠말뚝을 박은 이들의 정체... 미쳐 알지 못했던 역사의 한 켠이 드러난 것이다.
상덕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아있었다. 왜 그들은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박았을까? 단순한 풍수지리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날 밤, 상덕은 몽유병 환자처럼 이상한 꿈을 꾸었다. 눈이 쌓인 겨울 산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멀리 바위 밑에서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허덕이고 있었다. 상덕이 다가가자 그 노인은 침을 철철 흘리며 도움을 청했다.
"여기서 나를 살려주게...이곳에 갇힌 지 너무 오래되었네."
망령되게 움푹 패인 눈굽에 헌 기운이 서려있는 노인의 모습이 상덕을 공포에 빠트렸다. 그는 노인을 토닥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그 주술적 쇠말뚝, 백두대간에 꽂혀 있는 그 역겨운 철쭉을 빼내야 해. 그래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상덕은 허둥지둥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쇠말뚝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꿈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것들을 꺼내기 위해서는 일본군 군고구마 묘를 찾아가야 해. 그들이 망령된 영혼을 지키고 있다네."
이윽고 노인의 말이 멀어지며 상덕은 정신을 차렸다. 아침 해가 밝아오는 병원 창가에 서있던 것이다. 지난밤 꿈은 너무도 생생해 아직도 노인의 환영이 계속 남아있었다.
상덕은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 꿈은 의미심장한 암시가 담긴 것일까? 백두대간에 남아 있는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어딘가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의문은 가시지 않았지만, 현실로 되돌아온 상덕은 일단 지난 사건을 함께 겪은 영근, 화림, 봉길을 만나기로 했다. 그들도 알고 있을 만한 정보가 있을 것이다.
상덕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병원 대기실, 그곳에서 세 사람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봉길은 화림과 함께 주문을 외우며 부적을 써내고 있었고, 영근은 항상 그렇듯 휴대폰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 선생님 어서오세요. 이리 좀 와봐요."
화림이 상덕을 반갑게 맞이했다. 상덕은 그들에게 지난밤 꿈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봉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군고구마 묘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일본 옛 군인들의 묘를 말하는 것 같네. 우리가 마주쳤던 그 오니도 일본 고대 장수의 혼령이었잖나."
화림이 그의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직 밝히지 못한 부분이 꽤 많다는 뜻이겠군. 오니를 부른 이들, 그리고 오니를 지키기 위해 백두대간에 쇠말뚝을 꽂은 자들 말이야."
영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험한 녀석을 상대로 싸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그런 데 가시려구요?"
"꿈에서 그렇게 말했다니까. 우리는 갈 수밖에 없어. 그래야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어."
상덕은 단호했다. 그는 이번 일을 마무리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번엔 제대로 된 무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난 무서운 존재 외에도 위험한 것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화림의 제안에 따라 네 사람은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그들은 영근의 영안실에서 모였다. 지난번처럼 영안실을 그들만의 비밀 아지트로 꾸몄다.
봉길은 각종 부적을 써내며 주문을 열심히 외웠다. 이전 사건에서 맺힌 한을 풀기 위해서였다. 화림은 각종 무구와 주문서를 들고왔다. 근래에 일어났던 괴이한 사건들을 토대로 새로운 주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편 영근과 상덕은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화염방사기, 곤봉, 수류탄까지 동원했다. 영근이 한탄했다.
"이번엔 대박이네. 병원비만 수억은 나올 것 같아."
상덕도 염려스러운 듯 말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철저히 준비를 해야지. 길고 위험할 수도 있는 여정이 될 테니까."
준비가 모두 끝났을 무렵, 상덕은 지난번에 구했던 일본군 자료 하나를 꺼냈다. 도쿄대 기록 보관소에 있던 오래된 일본군 문서였다. 사이좋게 움직이던 해커 지망생 아들이 상덕의 요청으로 해킹해 건져온 것이다.
상덕은 문서 내용을 요약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본군이 대만에서 작전을 펼치며 일부 군인들이 한반도로 이동해 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영영부활주술서'를 구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백두대간에 뭔가를 했다는 군요."
"영영부활주술서라니, 아주 좋지 않은 것 같네요."
화림의 말에 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따르면 구한 대가로 중요한 누군가의 위패나 그의 몸을 그들이 가져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상덕이 이어서 설명했다. 그러자 영근이 우스운 듯 말했다.
"뭐, 시신을 가져가기로 했다는 건가? 돈암돌려들? 아니면 눈구렁이를 갖고 가기로 했나?"
봉길이 영근을 째려보며 꾸짖었다.
"모르면 말 좀 아끼시죠. 이런 주술적 일에 농땡이 피우면 안 됩니다."
"너희들 언제부터 무당이랑 경기 마님이 되셨지? 아, 죄송합니다. 돌아갑시다, 화염방사기에 휘발유 넣어놨어야 하는데..."
모두가 영근을 원망스런 눈길로 바라봤다.
상덕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갈 곳은 백두대간의 어딘가겠죠. 경상북도 영주 부근이 유력한 것 같네요."
"영영부활주술서에 따르면 전설 속의 명당자리에서 의식을 행했다고 하더군요. 그곳에 일본군 군고구마 묘도 있다는 거죠."
화림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은 거기입니다. 경상북도의 명당, 그것만 찾으면 전모를 파헤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조상님들의 넋도 달래드릴 수 있겠죠."
봉길도 힘주어 말했다.
"제 조상님들 넋은 꼭 모셔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 역사에 맺힌 한이 풀리겠죠."
네 사람은 이렇게 새로운 모험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작은 단서 하나만으로 이미 위험한 여정이 예상되었지만, 그들은 마음을 굳게 다졌다. 백두대간에 감춰진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서라면 각오해야 했다.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상덕 일행은 경상북도 영주로 향했다. 차를 몰고 깊은 산중을 달렸다. 주변은 아직 눈이 남아있는 겨울 풍경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명당자리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냈다. 골짜기 사이에 자리한 작은 마을, 그곳에는 오래된 사당이 있었다.
사당 안과 영역 밖의 영역인 주술서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들은 이 사당이 바로 일본군이 찾아왔던 곳이라고 추정했다.
"여긴 꽤 오랫동안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위를 잘 살펴봐야겠어요."
화림이 말했다. 네 사람은 주변을 삼삼오오 사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특별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살펴봐도 소용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할 것 같네요."
상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봉길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여기요! 여기 무언가가 있습니다!"
봉길이 부르는 곳으로 가보니 땅에 묻혀있던 벽돌 조각들이 나왔다. 그 벽돌 위에는 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기하학 문양 같기도 하고, 문자 같기도 합니다. 아마 일종의 암호 같은 게 아닐까요?"
봉길의 추측에 화림도 동의했다.
"맞아요. 이건 분명 암호에요. 좀 있다가 풀어보면 되겠죠?"
일행은 그 암호가 새겨진 벽돌 조각들을 주워 모았다. 그리고 그날은 인근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호텔 방에서 봉길과 화림은 암호 해독에 착수했다. 오랜 시간 고심 끝에 그들은 암호를 해독해냈다.
"여기에 '육곳 옹기'라는 단어가 보이네요?"
"맞아요. 그리고 저쪽에는 '일곱 현무'라는 글자도 있네요."
화림과 봉길은 해독 결과를 종합했다. 그러자 '육곳 옹기와 일곱 현무를 더하면 금룡의 길이 열린다'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나왔다.
"이건 분명 그 주술서 내용의 일부일 거예요. 그렇다면 금룡의 길이란..."
"백두대간을 가리키는 말일 겁니다. 그렇다면 금룡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어딘가에 있을 육곳 옹기와 일곱 현무를 합쳐야 한다는 뜻이 되겠죠."
봉길의 해석에 화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두 사람은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상덕과 영근에게 설명했다.
"아니 그렇다면 우리가 찾아야 할 건 도자기랑 뭔가 일곱 개인 거예요?"
영근이 어리둥절했지만 상덕은 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습니다. 옹기와 현무는 비유적 표현일 뿐이겠죠. 진짜 찾아야 할 건 아마 육개의 물건과 일곱 개의 다른 물건일 거예요."
"맞습니다. 상덕님 말씀처럼 그 물건들을 찾으면 금룡의 길, 즉 백두대간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 것 같아요."
화림의 말에 네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암호를 해독해 낸 것만으로도 이번 여정에서 한 발자국 더 전진한 셈이었다.
이튿날 아침, 네 사람은 암호 조각이 묻혀 있던 곳을 다시 찾아갔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별다른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봉길이 발을 구르며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요. 여길 더 이상 뒤지는 건 소용없는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봐도 봐도 여기선 아무 것도 나오지 않네요."
화림도 동의했다. 그러자 영근이 생각했다.
"여기는 그냥 암호가 있던 장소일 뿐일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은 아마 또 다른 데 있을지 모르죠."
그제서야 네 사람은 정답을 깨달았다. 저 암호는 진짜 장소를 가리키는 단서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네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육곳 옹기, 일곱 현무에 대해 캐물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할머니가 옛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저 근처 백년 묵은 영묘 있는데, 그 주위에 육개의 부적이 묻혀 있다는 말이 있죠. 그리고 그 부적에는 일곱 개의 수호 신령이 배치되어 있다나 뭐라나..."
할머니의 말에 상덕은 곧바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육곳 옹기는 육곳 부적을 뜻하고, 일곱 현무는 그 부적에 새겨진 일곱 신령을 말하는 구나!'
상덕은 곧장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화림과 봉길도 곧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할머니께서 영묘라고 하셨으니, 분명 일본군 묘를 가리키는 말일 거예요."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은 그 일본군 묘일 것 같네요."
"일본군 묘라...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거기로 향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영근이 힘주어 말했다.
이렇게 해서 네 사람은 백년 묵은 일본군 묘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묻고 조사하며 그 영묘의 위치를 가늠해나갔다. 수많은 실마리를 찾아가며 이윽고 그 묘가 있을 법한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깊은 산속 계곡, 주변은 아직 겨울 눈꽃이 소복히 쌓여있었다. 그 속에서 오래된 돌무덤들이 보였다. 비석마다 한자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네 사람은 조심스레 돌무덤 사이를 지나갔다.
그러던 중 봉길이 돌부처 하나를 발견했다. 그 부처 주위로는 금줄이 아홉 번 감겨 있었다. 금줄 하나하나 사이에는 여러 문양과 부적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인가 봅니다. 육곳 부적과 일곱 신령이 새겨진 금줄이 틀림없어요."
화림의 말에 상덕과 영근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주위를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봉길이 멀리서 신기한 모습을 발견했다. 돌부처 사이로 낡은 군복 차림에 군모를 쓴 노인이 앉아 있었다. 네 사람은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노인이 그들을 한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무엇을 찾고 계시는 겐가?"
그 노인의 말투는 어딘가 낯설었다. 일본 사투리 같기도 했다. 노인은 이어 말을 이었다.
"이곳은 우리 조상들의 넋이 깃든 자리이옵니다. 좋든 싫든 우리가 지켜온 대지이옵니더..."
노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돌부처를 쓰다듬었다.
"용케도 신령님들이 계시고, 아직도 함부로 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더니..."
상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일본군 묘를 찾고 있습니다. 혹시 이 일대가 그 묘터인지요?"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봉길이 이번에는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 깃든 혼령을 불러내려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육곳 부적과 일곱 신령의 힘이 필요합니다."
노인은 듣고만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것들은 반드시 신중히 다뤄야 할 것이옵니다. 이 고장은 그야말로 조상들의 힘과 영혼이 깃든 자리이옵거늘..."
노인은 네 사람을 돌부처 앞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부적이 새겨진 금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금줄에는 삼한시대부터 이어져 온 신령들의 주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육곳 부적이라 불리는 이 금줄을 풀면 안 됩니다."
그 말에 화림이 궁금해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부적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혼령을 불러낼 수 없을 텐데요."
노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 부적은 육곳의 힘이 모여 빚어진 것입니다. 그 부적 하나만으로는 충분한 힘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일곱 현무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일곱 현무라니, 그게 무엇을 뜻하는 건가요?"
봉길의 질문에 노인이 설명을 이었다.
"이 일대에는 일곱 개의 큰 바위산이 있습니다. 그 바위산 아래에는 일곱 용의 힘이 서려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바로 현무입니다."
"그렇다면 저 부적과 그 일곱 현무의 힘을 합치면 금룡의 길이 열린다는 뜻이군요?"
상덕이 깨달았다. 노인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경고하오니 그 힘은 함부로 불러내서는 안 됩니다. 저 일곱 현무에는 끔찍한 지랄들이 서려 있다나이다."
영근이 따지듯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지랄들을 불러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면요? 그럴 때는 어쩌면 좋죠?"
노인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렇게 답했다.
"그럴 경우에는 살아있는 혼백을 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화림이 의아해 했다.
"살아있는 혼백이란 무엇을 뜻하는 건가요?"
"곧 그 뜻을 알게 되실 겁니다. 만일 그 일곱 현무를 부르신다면..."
노인의 말이 그친 뒤에도 네 사람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이렇게 생각했다.
'일단 육곳 부적과 일곱 현무를 합치는 게 급선무겠지. 그래야 우리가 찾던 금룡의 길을 열 수 있을 터.'
네 사람은 곧장 일곱 현무가 있다는 바위산을 찾아나섰다. 노인의 말대로 그 일대에 일곱 개의 큰 바위산이 있었다. 그 바위산 주변을 돌아다니며 네 사람은 하나씩 조사해 나갔다.
첫 번째 바위산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바위산에 가서야 비로소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위산 정상부근에 커다란 바위 동굴이 있었다. 네 사람은 그 동굴 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동굴 안은 매우 넓고 높았다. 그리고 천장 가운데에는 붉은 주술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봉길이 그 문양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일종의 주술 진법인 것 같습니다. 아마 현무를 부르는 법이 여기에 적혀 있는 모양이군요."
화림도 동의했다.
"맞아요. 그 진법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곳이 바로 두 번째 현무가 있는 곳인 것 같네요."
상덕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찾아야 할 살아있는 혼백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어차피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일단은 이렇게 계속 현무의 자리를 찾아가는 수밖에요."
영근의 말대로 네 사람은 세 번째, 네 번째 바위산도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일곱 번째 바위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동굴 안에는 커다란 봉분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누런 해골이 있었다. 바로 그 주변에 피범벅이 된 사체 몇 구가 널부러져 있었다. 지켜보던 상덕이 소스라치며 입을 열었다.
"이게... 살아있는 혼백이란 건가?"
그러자 영근이 비꼬듯 말했다.
"맞아요. 그리고 살아있는 시신요. 아니 산 송곳이랄까?"
그의 빈정대는 말투에 봉길이 화를 내며 말렸다.
"이 자리가 너무 무서워서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영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네 사람은 모두가 이 자리의 강렬한 기운에 휩싸여 있다는 걸 느꼈다. 화림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혹시... 이곳에서 제대로 된 의식을 치러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자 사체 옆에 있던 해골이 입을 열었다.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 소리에 네 사람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봤다. 해골이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은 마침내 금룡의 길을 열기 위한 최후의 관문에 도달하셨군요."
상덕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나는 이곳 현무를 지키는 존재입니다. 사실 나는 한 인간의 영혼이었지만, 일본군이 이곳에서 음험한 주술을 부려 영혼만 남겨두고 육신은 버렸습니다."
봉길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 주변에 있는 사체들은..."
"그 주술의 희생자들입니다. 일본군이 그들의 혼백을 꺼내 나를 부르는데 사용했죠."
"혼백이라... 그래서 살아있는 혼백이란 말씀이셨군요."
화림도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해골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네 분들이 진정 금룡의 길을 열고 싶다면, 여기서 그 혼백 의식을 치러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곱 현무의 힘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네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그 의식을 치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이미 이렇게 멀리 왔다면 물러설 수는 없었다. 결국 상덕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 의식을 치르겠습니다."
이 말에 해골은 기뻐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오래간만에 이 의식을 치를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하지만 경고하오니 이 의식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혹여 실패하신다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상덕의 말에 해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비를 시작하라고 일러왔다. 의식을 위해 피의 제단이 만들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네 사람은 해골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동굴 한가운데에 거대한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사체들을 모았다. 그리고 병풍으로 에워싸고 촛대와 향로를 준비했다. 이윽고 모든 준비가 끝났다.
밤이 깊어갔다. 해골이 네 사람에게 말했다.
"이제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혼백 부르기 주문을 외우면 그에 맞추어 동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사람은 긴장한 채 부복했다. 그리고 해골의 부르짖음이 동굴에 울려퍼졌다.
"피의 제단이여, 열리라! 혼백들이여, 나와라!"
그 순간 사체들에서 푸른 안개 같은 것들이 피어올랐다. 그것들은 실체가 없는 것 같면서도 형체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들은 해골을 향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봉길이 해골에게 소리쳤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나요?"
"그렇습니다. 대신 노래를 부르셔야 합니다."
"노래요?"
"과거 일본군이 행했던 노래입니다. 그 악마의 노래를 부르면 혼백들이 모두 모여들 것입니다."
해골이 노랫말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네 사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끝내 오늘 파죽지세로 적진을 기어가며
태평양의 유정을 호령하리
창공에 우리 기 높이 뻗쳐
육해공에서 대영광을 구가하리라..."
그렇게 악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네 사람은 노래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혼백들도 그들을 에워싸며 어둠 속을 휘젓고 다녔다.
"야, 여기 혼백 한 마리는 또 없나봐!"
영근의 외침에 상덕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피범벅이 된 사체 하나를 발견했다. 영근이 그 사체를 주섬주섬 끌어다가 제단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 사체에서도 혼백 하나가 나와 주위를 빙빙 돌았다.
"진정 악랄한 혼백들이구나..."
화림의 말에 상덕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 근데 여기 더 있는 것 같아요."
상덕의 눈길이 피범벅 사체들을 향했다. 그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혼백들이 사체를 빠져나와 날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끔찍한 절규소리가 들렸다. 선명하게 생생한 영혼의 절규소리였다. 네 사람이 주위를 살펴보니 또 다른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번에는 그 사체에서 수많은 혼백들이 떼지어 나왔다. 그리고는 똬리를 틀며 날뛰었다.
그 혼백들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해골의 촉수 같기도 했고, 핏덩이 같기도 했으며, 괴기한 동물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흉측한 모습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끔찍한 절규소리가 동굴 전체를 울렸다. 선명하게 생생한 영혼의 절규소리였다. 네 사람이 주위를 살펴보니 더 많은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사체에서 수많은 혼백들이 떼지어 나왔다. 그리고는 똬리를 틀며 날뛰기 시작했다.
그 혼백들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해골의 촉수 같기도 했고, 핏덩이 같기도 했으며, 괴기한 동물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흉측한 모습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영근이 허술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봉길 역시 경악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순 없어!"
상덕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네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악마의 노래를 불렀다.
"장엄한 우리의 출정이여
전율케 하는 우리 포성에 적병은 섬뜩한들 어떠리
천하무적의 용사다워라
억만병정을 이끌고 우리 서슴없이 출정하리라"
그렇게 악마의 노래가 계속되었다. 혼백들은 흔들리며 더욱 격렬해졌다. 영근은 혼백들이 너무 무서워 노래를 잠시 멈췄다가 상덕의 노려보는 시선을 받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한편 해골은 계속해서 주문을 외치고 있었다.
"피바다여! 혼백이여! 나를 받아들여라!"
점점 혼백의 수가 늘어났다. 대여섯 구가 넘어 보였다. 혼백들은 모두 해골 주위로 모여들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윽고 해골이 외쳤다.
"이제 그만! 악마의 노래를 멈추시오!"
네 사람이 입을 봉하자 혼백들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해골이 말을 이었다.
"이 혼백들이 바로 일곱 현무의 근원입니다. 하지만 아직 결집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해골은 갑자기 주문을 외웠다. 네 사람도 모르는 생소한 주문이었다. 그러자 혼백들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혼백의 수만큼 주위에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면서 돌풍까지 일었다.
"결집하라! 현무대장군이여!"
해골의 외침에 혼백들이 마치 회오리치듯 돌더니, 드디어 거대한 괴물 형상을 이루었다. 네 사람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꿇었다. 그 거대한 형상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이... 이것이 바로 현무의 정체란 말인가..."
화림의 중얼거림에 상덕이 힘겹게 대답했다.
"그... 그렇군..."
"우워어어어어!!!!"
괴물의 형상이 입을 벌려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동굴이 꿈틀거렸다. 네 사람은 공포에 떨며 몸을 움츠리기만 했다.
그때 해골이 다시 한번 외쳤다.
"나를 받아들여라!! 나는 너의 주인이다!!"
괴물 형상이 크게 돌며 해골을 향해 회오리쳐 들어갔다. 해골 주위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네 사람은 그 광경을 아연실색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곧 회오리바람이 사그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골 자체에 변화가 일어났다. 해골이 서서히 일어나며 괴물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형상을 하고서 해골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음성은 괴물의 음성이었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다..."
상덕이 겁에 질려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나는 곧 현무다. 우리 조상들의 힘이 서려 있는 그 일곱 용들의 화신이다."
봉길이 다시 한번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알겠느냐. 이 내 손에 살아있는 혼백을 넘겨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들은 금룡의 길을 열 수 있다."
화림이 주위를 둘러보며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죽여서라도 혼백을 구해야 한다는 말이냐?"
영근의 물음에 현무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 너희들 중 한 사람의 혼백을 바쳐야 한다. 그게 아니면 금룡의 길은 열릴 수 없다."
네 사람은 함구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현무가 외쳤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금룡의 길을 열지 않는다면 눈앞에 닥칠 화는 가히 상상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 순간 영근이 입을 열었다.
"됐습니다. 저를 희생해주세요..."
"영근 형님!"
상덕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봉길 역시 영근을 말렸다.
"말리시오. 우리 이 길을 떠나야 한다면 여기까지였습니다."
하지만 영근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너무 오래 살았다. 젊은 녀석들이 앞으로 더 살 생을 마련해야지. 이것들아, 내 목숨을 가져가거라!"
영근은 갑자기 손목을 그었다. 피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그 피를 모으던 현무는 크게 방추산을 돌며 기뻐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혼백이다! 그대가 내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
현무는 영근의 몸을 향해 회오리를 일으켰다. 삽시간에 영근의 육신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영혼만이 남았다. 마치 안개 같은 영혼이었다. 그 영혼은 해골의 몸으로 들어갔다.
해골의 형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두 개의 주춧돌처럼 생긴 것이 해골 위에 떠올랐다. 그리고 네 개의 발이 돋아났다. 점점 형상은 사나워져갔다.
"이것이... 너희가 원하던 것이었느냐?"
거대한 용 모양의 형상이 네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무가 자신의 형상을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것이 우리가 구하던 현무였습니다."
상덕이 힘겹게 대답했다. 봉길도 동의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근 형님의 혼백을 통해..."
"영근이라는 자는 나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제 그의 육신은 영원히 죽은 것이다."
네 사람 모두 경악했다. 봉길이 절규했다.
"잠깐만요! 그럼 영근 형님은..."
"그의 존재 자체가 이제 내 안에 있다. 그가 영생할 순 없다."
화림도 절망스러워 보였다. 그때 현무가 입을 열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너희는 육곳 부적을 풀어 이 현무와 합치면 된다."
봉길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영근 형님은..."
"너희가 살아가는 한 그의 넋은 여기에 영원히 잡혀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희가 금룡의 길을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대로, 너희는 너희대로 가는 것뿐이다."
그 말에 상덕이 물었다.
"영근 형님의 혼백이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우리가 무슨 수확이 있겠습니까? 금룡의 길을 열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잖아요!"
현무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대답했다.
"그렇다면 대신 이걸 들어라..."
네 사람이 기대에 찬 눈길로 현무를 쳐다보았다. 현무는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옛적부터 백두대간을 지키던 산 귀신들이 있었다. 일곱 신령이 각기 자신들의 영역을 차지하고 수호하고 있었지. 그런데 일본이 대한민국을 강점하면서 그 신령들을 모두 제압하고 쇠말뚝을 꽂았던 것이다."
"대체 그 일곱 신령이란 게..."
화림의 질문에 현무가 답했다.
"동해에서 피어오른 백두산 신령, 서해에서 날아온 지리산 신령, 남해바다를 지키던 한라산 신령, 그리고 중앙에서 솟아오른 태백산 신령. 이 네 신령을 머리 삼아 주변에서 작은 신령 셋이 둘러싸고 있었다. 바로 이 일곱 신령이 백두대간을 수호하던 존재들이었다."
네 사람은 숨죽여 현무의 말을 경청했다. 현무가 이어갔다.
"하지만 일본이 그 신령들을 모조리 제압한 뒤 쇠말뚝을 꽂았다. 그리고 곳곳에 군인들의 묘를 만들었지. 그 묘에 그들의 넋을 가두어 버린 것이다. 백두대간의 기운이 모두 사그라지면서 우리 삼한에 재앙이 닥치게 되었다."
상덕이 깨닫고 중얼거렸다.
"그래서... 오니를 부른 거구나..."
"그렇다. 하지만 오니는 쇠말뚝 하나만 뽑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온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 나머지 쇠말뚝들이 곳곳에 있을 것이다. 너희가 그것들을 모두 제거한다면..."
"우리 한반도의 기운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화림의 말에 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너희가 진정으로 금룡의 길을 열고 싶다면, 일본군 묘에 갇힌 그 일곱 신령의 넋을 건져내야 한다."
상덕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렇다면 우리가 힘들고 위험한 싸움을 더 벌여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 너희가 완전히 정화의 길을 걷지
"그렇다. 너희가 완전히 정화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우리 한반도는 영원히 기운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현무의 말에 네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그동안 겪었던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두려움과 고민이 교차했다. 하지만 이내 상덕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걷겠습니다."
그 말에 봉길과 화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영근의 대가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현무도 만족한 듯 했다.
"좋다. 그렇다면 너희에게 마지막 과제를 주겠다."
이내 현무의 입에서 뭉게구름 같은 것이 나왔다. 그것은 온몸에 이리저리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끝내 네 개의 공처럼 변했다. 그 네 개의 공은 네 사람 앞에 멈추었다.
"저건 대체 뭐죠?"
봉길이 궁금해 했다. 현무가 설명했다.
"너희가 일곱 신령의 넋을 건져내기 위해서는 쇠말뚝의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 쇠말뚝의 자리는 바로 이 공에 적혀 있다. 하지만 너희가 아직 신령의 가호를 받지 않은 탓에 글자를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상덕의 물음에 현무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희는 신령의 가호를 받기 위한 의식을 치러야 한다. 각자 이 공을 받아 전국을 방방곡곡 돌며 신령의 성소를 찾아내어라. 신령의 가호를 입게 되면 저 공에 적힌 쇠말뚝 위치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네 사람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용기를 내어 각자 한 개의 공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 공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그들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말았다.
상덕은 눈을 떴을 때 눈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설산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설산의 정상 어딘가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상덕은 그 소리를 따라가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자 끝내 설산 정상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 안에는 긴 몸통을 가진 뭔가가 있었다. 바위를 유심히 살펴보니 그것은 거대한 용의 형상이었다.
"바로 그 화신이 동해 백두산 신령일 거야. 내가 찾아야 할 신령이구나!"
그때였다. 그 거대한 용 바위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그리고 그 용은 살아 있었다!
"네가 과연 나의 가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보여 다오."
상덕은 깜짝 놀랐다. 살아있는 신령을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신령이 계속해서 말했다.
"너는 지금부터 삼 척
화산 용암을 피해 걸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물음에 제대로 답해야 한다. 만일 실패한다면 너는 이 설산에 남겨져 영원히 얼어붙고 말 것이다!"
상덕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을 물으실 건가요?"
"첫 번째 물음! 칼을 든 자는 칼로 죽는다는 뜻이 무엇인가?"
상덕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전쟁과 폭력으로 남을 해치면 결국 제 몸에 상처만 남을 뿐입니다."
"그렇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물음을 들어라!"
신령의 물음은 계속되었다. 화산 용암을 피하며 바위를 걸었고, 그 와중에도 물음에 답해야만 했다. 상덕은 때로는 머뭇거리며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매서운 바람이 일어나 그의 발걸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평정심을 되찾고 다시 바위를 건너갔다.
마지막 물음에 상덕은 단 한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더 많은 것을 원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피폐만을 부른다."
신령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향해 불을 내뿜었다. 하지만 그 불길은 상덕을 녹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정화시켰다. 안개 같은 것이 상덕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잠시 후 상덕의 눈에 공이 바람에 흔들리며 어떤 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두산 신령의 가호를 받았구나. 이제 공에 적힌 쇠말뚝 좌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상덕은 기뻐하며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그가 받은 신령의 가호 덕분에 드디어 비로소 금룡의 길을 향한 여정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봉길 또한 설산 어딘가에 있었다. 주변은 온통 하얗게 뒤덮인 설경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낯선 환경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때 멀리서 거대한 덩치의 형상이 비쳤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손바닥만 한 키에 장군 복장을 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시오?"
봉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 대신 그 작은 장수는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는 그 화살을 봉길 앞에 떨어트렸다. 나무 화살촉에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바위 머리에 올라가거라. 그리고 네 가문의 창시자인 나를, 지리산 산신을 발견하여라.'
봉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과연 그의 시야에 넓은 바위산이 펼쳐졌다. 그렇게 봉길은 그 바위산을 향해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돌출되어 있는 바위를 발판 삼아 너무도 힘겹게 등반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바위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봉길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넓은 바위산 자체가 바로 지리산 신령의 형상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하산하지 않고 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다. 마침내 정상 부근에 이르렀을 때, 봉길은 바위 능선이 마치 사람 형상을 한 채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를 알아보겠나? 나는 바로 서해의 영령, 지리산 신이로다!"
순식간에 거대한 크기로 변한 바위 형상이 봉길을 내려다보았다. 봉길은 겁에 질려 바위에 비트려 앉고 말았다.
"너는 과연 나의 가호를 입을 자격이 있느냐? 만일 실패한다면 이 바위에 갇혀 영원히 돌이 되고 말 것이다!"
봉길도 영문을 몰랐지만, 도리어 가호를 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그는 신령의 시험에 임했다.
시험은 단순했다. 봉길 앞에 바위 3개가 놓였다. 그리고 그 위에 새겨져 있는 글자만 따라가면 충분했다. 그렇게 봉길은 바위를 옮겨 나가며 글자를 맞춰가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녹록치 않은 방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거센 바람이 불어 그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봉길은 오래 전 야구를 할 때처럼 근력을 다해 바위를 옮기며 해답을 찾아나갔다.
그렇게 해서 그는 "산에 오르는 자, 그 기개를 대견히 여겨라"라는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지리산 신령은 봉길의 주위를 선밀화 불꽃으로 휘감았다. 봉길의 온몸이 정화되었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공에는 글자들이 아릿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림은 한라산으로 이동했다. 산의 정상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자 온통 짙은 안개로 가득했다. 주변은 보이지 않고 다만 섬섬옥수로 흐르는 물소리만이 들렸다. 그때 천둥 같은 고제 소리가 들렸다. 화림의 심장이 쿵쿵거렸다.
안개 사이로 거대한 물고기다리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림은 제 발밑을 살펴보니, 거기에는 물이 흘렀다. 그 물은 실제로 바다인 것 같았다.
안개가 가셨을 때 드디어 화림은 완전히 그 물고기 형상을 볼 수 있었다. 그 형상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너는 나의 가호를 받을 자격이 있느냐?"
물고기가 인간의 말을 했다. 화림은 물고기의 말에 기가 질렸다.
"그대가 만일 내 물음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천 년 세월 동안 내 물고기 형상의 배 속에 갇히게 되리라."
화림은 그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멀리 온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힘써 물음에 답하기로 마음먹었다.
"들어라! 첫 번째 물음이로다!"
화림은 그 이후 7번에 걸쳐 물음을 받았다. 마지막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다는 위대하고 너그럽지만, 그렇기에 바다가 얕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 위대함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옳다. 너는 나의 가호를 받을 만하구나!"
한라산 신령의 외침과 함께 주위로 환한 빛이 퍼졌다. 여명을 방불케 하는 그 황홀한 빛줄기가 화림을 정화시키고 있었다.
드디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림은 새로운 활력으로 가득했다. 한라산 신령의 가호를 입은 것이다.
네 번째 신령을 찾아야 할 차례는 영근이었다. 영근은 눈을 떴을 때 주변이 아주 어두운 것을 발견했다. 대체 어딘가? 영근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이 없는 암흑뿐이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갑자기 영근 앞에 등불이 하나 켜졌다. 등불 아래에는 커다란 사자 두 마리가 있었다. 그 사자들이 입을 열었다.
"중앙에서 솟아오른 태백산 신령의 영역이다. 너는 우리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영근은 어리둥절했지만, 어쨌거나 시험에 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자들은 이렇게 다시 입을 열었다.
"사자는 돌담을 허물었다. 돌담에는 돌들이 하나 하나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돌이 하나도 부서지지 않았다면 돌이 정확히 몇 개였을까?"
사자들의 수수께끼 같은 물음에 영근은 한동안 망설였다. 이윽고 그는 대답했다.
"돌담은 아무리 세도 돌들 하나만 있어도 돌담이 된다는 겁니까? 따라서 정답은 하나입니다."
"옳았다!"
사자들이 대견해했다. 그리고 또 다른 물음을 던졌다. 이번에는 좀 더 까다로웠다.
영근은 여러 물음에 답하며 애썼다. 사자들의 물음 중에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영근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차분히 생각했다. 사자들의 질문에 답을 해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물음 자체에 담긴 의미를 캐내는 것이었다.
한참을 고군분투한 끝에 영근은 마지막 물음에 완벽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중심을 잃은 이가 핵심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균형을 잃고 말 것입니다."
"통 크구나!"
영근의 대답에 사자들이 감탄했다. 그리고 그들은 영근 주위로 선을 그으며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커다란 원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원이 주위를 모두 비추기 시작했다. 환한 빛이었다.
"영광이로다! 너는 태백산 신령의 가호를 받을 자격이 있었노라!"
영근은 그 환한 빛에 휩싸였다. 마치 정화의 불길 속에서 삶이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경이로움이었다. 정화가 끝나자 영근이 들고 있던 공에 또박또박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는 드디어 금룡의 길을 향한 새로운 한 발자국을 내디딜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머지 세 작은 신령은 화림, 상덕, 봉길 각자에게 돌아갔다. 화림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을 경계하는 주문을 외우며 강원도 설악산을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설악산 신령을 만났다. 거대한 바위 불상 형상의 신령은 까마득한 산중에서 불교의 진리를 외치며 화림을 시험에 부쳤다. 설산비를 맞으며 정진하는 화림에게 마침내 가호의 빛이 내렸다.
상덕은 전북 모악산을 찾았다. 산의 정기를 흡수하며 골짜기 계곡을 걸었다. 물소리만이 울리는 그 조용한 공간에서 갑작스레 코뿔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상덕은 그 거대한 모악산 신령을 만난 것이었다. 기가 막힌 노력 끝에 상덕은 마침내 신령의 가호를 받을 수 있었다.
봉길은 지리산 영취산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수많은 새떼를 만났다. 하늘에 가득했던 새들이 과연 신령일까 싶었지만, 이내 새들이 봉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새떼의 공격을 피하며 봉길은 영취산 신령의 시련을 견뎠다. 마침내 그는 신령의 가호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네 사람 모두 일곱 신령의 가호를 받았다. 서로가 어딘가에서 고생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며, 그들은 새로이 용기를 내어 다음 여정을 기약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다시 모였다. 몸과 정신이 수척해진 채로 말이다.
"모두 무사히 돌아왔군. 그리고 신령의 가호도 받은 것 같아."
상덕이 말했다. 봉길이 대답했다.
"전 일곱 개의 시련을 모두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힘들었어요."
화림 역시 상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두 너무나 피곤해 보이는데, 잠시 쉴까요?"
그래서 네 사람은 서로의 여정담을 들려주며 쉬기로 했다. 시간이 가면서 그들은 점점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금룡의 길을 향한 마지막 여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가 저물어 어스름해지자 영근이 불을 피웠다. 모닥불 주위에서 네 사람은 각자 공을 꺼내 들었다. 공 속의 글씨가 희미하게 빛을 냈다. 이제 그들은 그 글씨를 볼 수 있었다.
"각자의 좌표를 맞추면 되겠군."
상덕이 말했다. 화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리고 그 지점들이 만나는 자리에 쇠말뚝이 박혀 있을 거예요."
"우리가 그 지점을 찾으면 금룡의 길이 열리는 거죠."
봉길이 힘주어 말했다. 영근도 동의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를 가야 할까?"
네 사람은 모닥불 주위에 공들을 늘어놓고 서로의 공에 쓰인 좌표를 대조해 보았다. 이내 그들은 모든 좌표가 교차하는 한 지점을 알아냈다.
"이건 경기도 북부 어딘가 같군."
상덕이 지도를 펼쳤다. 봉길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가 고향이 바로 그 부근인데..."
"그럼 우린 그쪽으로 가야 하겠네?"
영근의 물음에 네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그들은 새로운 행선지를 향해 출발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화림은 주머니에서 부적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에게 든 생각이 있는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
"무슨 일인가?"
상덕의 물음에 화림은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냥 좀 불길한 기운이 스쳐간 것 같아서요."
이내 화림은 걱정을 접었다. 일행은 밤을 달리며 경기도 북부를 향해 갔다. 드디어 그들은 목적지에 다다랐다.
북한산자락이었다. 그곳에는 벌써부터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무언가 큰 사건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구덩이 옆에는 삼발이와 곡괭이, 삽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네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바로 쇠말뚝이 박혀 있을 곳이었다.
"함께 파보시죠."
상덕이 앞장을 섰다. 네 사람은 삽과 곡괭이, 삼발이를 집어 들고 구덩이 주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땅은 너무나 단단했다. 부지런히 삽질을 해도 금이 가기는커녕 삽자루만 부러질 뿐이었다. 땀이 흘렀다. 손으로 직접 파기도 하고 칼로 땅을 후벼 파기도 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고, 새벽이 밝아왔다.
"이건 말이 안 되는군."
늙수그레 지친 상덕이 말했다. 영근이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한탄했다.
"어쩌면 좌표를 잘못 알아낸 건지도 몰라. 이제 우리가 기력도 없는데..."
봉길도 침통하게 말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요?"
그때 화림이 손에 부적을 들고 다가와 모닥불에 피웠다. 부적이 타들어 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림은 연기를 등에 쐈다. 이어 그는 팔을 넓게 벌려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산천이여, 이 험한 땅으로부터 답을 보이소서...!"
화림의 주문이 계속되자 점점 하늘에 먹구름이 꼈다. 그리고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돌풍이 휘몰아쳤고, 천둥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어느 순간 굉장한 빗발이 쏟아졌다. 바로 그 자리에서 폭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네 사람은 그 비를 맞으며 움츠렸다가, 어느 순간 환한 빛이 번쩍였다. 벼락이었다!
"어어어!!!"
네 사람은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벼락은 의외로 무서운 게 아니었다. 번갯불이 굉장히 환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벼락이 어딘가를 비추고 있었다!
번쩍이는 빛 아래 구덩이 한가운데에, 반질반질한 철제 기둥 하나가 박혀 있었다. 바로 그 쇠말뚝이었다!
"저기요! 저기 있어요!"
네 사람은 쇠말뚝을 들고 비를 맞으며 기뻐했다. 어려운 모험을 거쳐 마침내 백두대간의 첫 번째 쇠말뚝을 빼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에요!"
화림이 외쳤다. 상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건 첫걸음에 불과해. 아직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모든 게 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첫 번째 쇠말뚝을 뽑아낸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네 사람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근이 쇠말뚝을 꼭 쥐고 외쳤다.
"이제 일본군 묘를 찾아가야 해! 우리가 건져내야 할 일곱 신령이 거기에 있다고 했잖아!"
"맞습니다. 조상님들의 숙원을 이제야 비로소 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봉길의 말에 화림과 상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에 올라탔다. 이제 그들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야만 했다.
다행히 그들에겐 경상북도 영주의 위치가 알려져 있었다. 그들이 만난 노인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 곳이었다. 상덕은 운전을 하며 말했다.
"얘기를 들으니, 영주 인근의 어떤 산에 일본군 묘가 있다고 했어. 그곳에 신령들의 혼백이 갇혀 있을 거라 하더군."
"그렇다면 우리가 그곳에서 신령들을 건져내야 한다는 뜻이겠죠?"
봉길의 말에 화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리가 그 일곱 신령을 구해내야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힐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일본군 묘라니... 좀 위험할 것 같은데?"
영근의 걱정스런 말에 상덕이 대답했다.
"걱정 마. 지금까지 해 왔듯, 우린 잘해낼 수 있을 거야."
마지막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머지않아 경상북도에 도착할 것이다. 차 안이 조용해지자 화림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상님들의 숙원도 지켜내야 하고, 우리나라 대지의 기운도 지켜내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를 지켜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상덕이 힘주어 대답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관문이에요. 우리가 잘 해내면 모든 게 해결될 거예요. 그리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봉길도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아픈 상처도 치유가 되겠죠. 영근 형님의 혼백도 구출해내면 그분도 편히 쉴 수 있을 겁니다."
차 안이 잠시 고요해졌다. 네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편으로는 두렵고 긴장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게 잘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윽고 새벽이 밝아왔다. 상덕 일행은 경상북도 영주에 도착했다. 네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깊은 산중이었다.
어딘가에서 개골개골 내가 흘렀다. 먼 하늘 위로는 큰 산 능선들이 펼쳐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독수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정말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군."
봉길이 숙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여긴 엄청 각오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에요."
상덕이 앞장을 서며 말했다.
"가보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네 사람은 계곡을 지났다. 이윽고 그들은 마을에 다다랐다. 허름한 농가 몇 채가 있을 뿐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농부들이 밭에 나가 있었다.
화림이 한 농부에게 다가가 여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여기가 어디겠습니까? 영주 땅 바로 이 곳이지요."
"영주라고요? 그럼 혹시 영주 근처에 오래된 일본군 묘가 있는지 아시나요?"
"군 묘라니요? 그런 게 있긴 합니다만..."
농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윽고 대답했다.
"우리 마을에서 얘기 들은 바로는, 늙다리 산 중턱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상덕 일행은 곧바로 그 늙다리 산으로 향했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자, 낙엽이 무성하게 깔려 있었다. 벌레 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여긴 꽤 무서운 느낌이 드는군."
영근이 소곤거렸다. 상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느낌은 틀림없이 신령들의 기운이 서려 있다는 뜻일 거야."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찾는 일본군 묘도 가까이 있겠네요."
화림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네 사람은 서로를 힘주어 마주보며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들은 작은 능선과 능선 사이에 있는 평지에 다다랐다. 주변을 살펴보니 돌로 쌓은 둔덕 몇 개가 보였다. 봉분 같았다.
네 사람은 조심스레 그 둔덕 가까이에 다가갔다. 둔덕 위에는 비석들이 서 있었다. 낮은 숲이 무성히 우거져 있었다. 그 사이를 더듬더듬 걸으며 상덕이 중얼거렸다.
"여긴 일본군 묘실일 거야. 틀림없이..."
"그렇군요."
화림 역시 동감했다. 이윽고 네 사람은 비석 하나 앞에 다다랐다. 허물어져 있는 비석이었다. 그 앞에는 시체 하나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곳이 과연 일본군 묘라면, 이건 뭐지...?"
봉길이 그 시체를 르며 물었다. 영근이 대답했다.
"이 주위를 보니 옛날에 전투가 있었나 본데."
"전투라고요? 어쩌면 일본군과 싸웠던 게 아닐까요?"
화림의 말에 상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맞았을 거야. 아마 이 일대에서 일본군을 향한 작은 항쟁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이렇게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진 게 아닐까 싶군."
그들은 조심스레 이곳저곳을 더듬어 갔다. 그렇게 얼마를 더 가니, 골목길 하나로 이어졌다. 그 골목길 양옆으로 작은 모닥불 자리와 텐트 자리들이 있었다. 더 깊숙이 들어가자, 이따금씩 병력 배치 지도같은 것들도 보였다. 봉길이 그 지도를 주워 살펴보았다.
"여기 적병 배치 상황이 그렸어요. 저쪽은 우리 진영이네요."
"그렇다면 여기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말인가?"
상덕의 말에 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습니다. 매우 오래된 전쟁터 같은 느낌이 듭니다."
봉길은 다시 골목길을 따라갔다. 그 끝에서 그는 홀연 서 있었다. 그리고 멀리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찾던 곳이 바로 저기예요."
네 사람이 한곳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그곳에는 거대한 둥근 돌무덤들이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무덤은 비교적 작았다. 하지만 세 번째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 주위로 지키는 병사 조각상들이 서 있었다.
네 사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심조심 그 무덤 쪽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자 웅장한 규모에 입이 딱 벌어졌다. 화림이 중얼렸다.
"이건... 이건 진짜 대단한데..."
"그렇지. 저게 바로 일본군 장군 묘실일 거야. 그리고 네 개의 무덤은 영렬이라고 하지 않았나."
상덕의 말에 봉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총 다섯 분이 여기 모셔져 계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면 아마도..."
영근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네 사람 모두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고 있었다. 할 말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자 봉길이 입을 열었다.
"신령님들, 저기 계신가요?"
그러자 웬일인지 땅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네 사람의 발밑에서 진동이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이건 또 뭐지...?"
영근도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때 화림이 눈치챘다.
"제가... 무언가를 느낄 것 같아요. 정말 엄청난 기운이 여기서 나오고 있어요. 이건 분명 신령들의..."
화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무덤 앞에서 먼지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동은 점점 더 심해졌다. 네 사람은 바닥에 꿇어 앉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먼지바람 속에서 인간의 형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사람은 아니었다. 형체는 흙과 먼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초자연적인 존재 같았다. 그 형상은 네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인간들아, 너희는 누구며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
그 형상이 물었다. 상덕이 힘겹게 대답했다.
"우리는... 우리나라 삼한 땅의 기운을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하! 삼한 땅의 기운을 지키려 했다더냐? 당치 않은 소리다!"
형상이 비웃었다. 봉길은 기가 질렸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신령님, 우리가 한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봉길이 용기내어 말했다.
"우리는 먼저 한반도 곳곳에 숨겨진 일곱 신령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백두대간에 꽂혀있던 첫 번째 쇠말뚝을 발견해 뽑아냈지요."
그러자 형상이 눈살을 갸우뚱했다.
"그렇다더냐? 그래서 너희는 이제 나머지 쇠말뚝들을 다 뽑아내려 하는 게로구나?"
"정확합니다."
화림이 힘주어 대답했다.
"우린 이 일본군 묘에 갇혀 있을 일곱 신령을 구해내려 합니다. 그래야 백두대간의 기운을 회복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건 쉽지 않을 것이다."
형상이 으름장을 놓았다.
"이 묘 앞에는 주술이 가해져 있어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다. 또한 일곱 신령이 갇힌 곳에는 그에 상응하는 적들이 지키고 있다."
"적들요?"
영근의 물음에 형상이 대답했다.
"그렇다. 옛 일본군 장수들과 병사들의 넋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너희가 그들을 물리치지 못하면 어떤 신령도 구출할 수 없을 것이다."
상덕이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가 싸워야 한다는 건가요?"
"너희가 해야 할 일은 그것밖에 없다. 영령이 있는 저곳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일본군 병사들의 심장을 하나씩 빼앗아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엔 봉길이 반문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심장을 어떻게 빼앗습니까?"
"너희가 스스로 알아내야 할 것이다. 저 깊은 동굴에 그들이 있다. 그리고 동굴 가장 안쪽에 이르면 너희가 원하던 신령들을 만날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그들을 구해내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서 전부 생매장될 것이다."
네 사람은 숙연해졌다. 상덕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요?"
"염려마라. 이미 숙명과도 같은 길을 들어섰다면 포기할 수는 없다."
화림이 힘주어 대답했다.
"그래요. 우리 모두 각오하고 왔습니다. 돌이킬 수 없습니다."
"너희가 가고자 하는 곳은 너무나 위험하다. 쉽게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형상이 경고했다. 그리고는 먼지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네 사람은 이윽고 일본군 묘 앞에 홀로 남겨졌다. 봉길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갈 길은 아직도 멉니다. 위험천만한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이킬 수는 없죠."
영근이 힘주어 말했다. 화림도 끄덕였다.
"신령님께서도 말씀하셨죠? 이미 숙명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요. 우리는 이 길을 끝까지 가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상덕이 단호히 말했다.
"절대 물러설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기운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도 헤쳐나가야죠. 우리가 이 길을 열어제쳐야 한다는 걸 믿습니다."
네 사람은 다시 한 번 서로를 마주보며 의기투합했다. 이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자명했다. 한 발짝 한 발짝 그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동굴 안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상덕 일행은 일본군 병사들의 심장을 하나하나 모으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동굴 끝에서 만날 일곱 신령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앞으로 더욱 위험천만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덕 일행은 백두대간의 기운을 회복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무장했다. 그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숙명의 길이었다.
상덕 일행이 일본군 묘 앞에서 어떤 불가사의한 일들을 겪게 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상덕 일행이 백두대간의 기운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나갈 것이라는 사실이다.